
도서명 : 빛의 소멸 저자 : 손영미 출판사 : 도서출판등
「빛의 소멸」은 2021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따라서 작품성은 이미 공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렬한 빛이 심사위원의 가슴에 한줄기 감동의 균열을 만들었을 것이다. 빛의 모체는 뜨거움이다. 그 뜨거움에서 탄생한 빛은 곧바로 나아간다. 물체를 만나면 부딪히고 나뉘고 꺾이고 펼쳐진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수미상관을 이루어 작품의 완결성을 확보하며 내용을 탄탄하게 감싸고 있다.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공중전화, 삐삐와 롤러스케이트, 무심천 벚꽃, 막걸리와 육거리 순대 등 대학 시절 필자가 경험한 청주는 그런 공간과 사물들로 은유 된다. 소설은 20세기를 관통한다. 필자의 기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 친근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 문맥은 이미 오래된 금속활자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소설의 주인공 문경은 바하를 만난다. ‘벼리’라는 학습공동체가 작품의 배경이다. “들뢰즈, 베르그송, 푸코 같은 철학 강좌부터 시몬 베유와 수전 손택, ‘도덕경 함께 읽기’, 그리고 ‘한방에 통하는 자기소개서’ 같은 실용적인 강좌와 시, 소설, 서평 쓰기까지, 〈벼리〉는 매일 뭔가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공동체였다.” 문경은 “프랑스의 전태일이라는 시몬 베유 대신 소설 강좌를 듣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실은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뜬금없이 마음의 우물에 조약돌을 던진 것처럼 기억의 무늬가 소용돌이처럼 번져나갔다.” 『푸코와 함께 춤을』 『들뢰즈를 내 품에』 『도덕경처럼 살기』 등을 통해 손영미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 저변을 가늠해 본다. 한편 소설가로서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작가적 에너지의 원천이 철학과 긴밀하게 접속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소설가의 뜰, ‘소뜰’ 의 특성과 회원들의 캐릭터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난 바하, 난 육펜스, 난 연필, 난 사짜, 난 쌀고,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연탄’으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멤버십에 합류하는 문경은 속함과 버려짐,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속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거리로 나와 홀로 걸어야 한다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낀다. 삶의 물결은 그렇게 나를 어디론가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는 듯하다. 원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원심에서 발생한 삶의 궤적은 점점 퍼져나가 저항하다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삶의 괴리감과 내적 갈등의 소용돌이를 표현한다. 삶의 물결은 그러하지만, 빛은 그렇지 않다는 항변은 복선처럼 들린다. |